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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아름다움 – ‘설레다’라는 감정의 떨림

by 유니닷:) 2025. 5. 7.

    [ 목차 ]

‘설레다’는 단어 하나로 마음의 떨림, 두근거림, 기대, 불안, 기쁨을 모두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어의 감정어 중 가장 섬세하고도 감성적인 표현 중 하나입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처음 마주한 감정, 어떤 순간을 앞둔 긴장감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설레다’라는 단어가 가진 언어적 아름다움과 문화적 깊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려 합니다. 한국어 고유 감정어로서의 ‘설레다’는 일상과 예술, 관계와 세대 속에서 어떻게 뿌리내려 있는지 살펴봅니다.

한글의 아름다움 – ‘설레다’라는 감정의 떨림
한글의 아름다움 – ‘설레다’라는 감정의 떨림

 

 

 

‘설레다’의 어원과 변화

‘설레다’는 ‘설레이다’의 준말로, 고유어에서 기원합니다. 예전 문헌에는 ‘설레이다’, ‘설래이다’라는 표현이 혼용되기도 했으며, 이는 모두 어떤 감정적 혹은 신체적 떨림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오랜 시간 동안 그 뜻의 외연을 조금씩 넓히며 변화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불안, 걱정과 같은 감정에서 오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소식에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와 같은 문장은 그 시대의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설레다’는 점차 긍정적인 감정과 더 가까워졌습니다. 사랑, 기대, 시작, 봄, 여행 등 긍정적 정서와 함께 쓰이면서, 이 단어는 사람들의 희망과 환희를 담는 표현으로 변모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어 사용자에게 ‘설레다’는 단순한 감정 묘사를 넘어 감성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언어입니다.

 

‘설레다’라는 단어는 발음 구조부터 감정의 떨림을 담고 있습니다. 입술을 가볍게 닫았다 열며 발음하는 ‘설’은 시작의 감각을, 이어지는 ‘레다’는 그 감정이 서서히 퍼지는 리듬을 전달합니다. 이처럼 발음의 물리적 특징이 감정의 리듬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단어는 드뭅니다.

말을 꺼낼 때조차 그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설레다’의 언어적 힘입니다. 예를 들어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는 문장은 단순한 사실을 넘어, 그 인물의 내면 진동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특히 ‘설렘’이라는 명사형은 단어 하나만으로도 감정의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어 광고, 문학, 노래 가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운적 아름다움은 한국어가 얼마나 감정 중심적인 언어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설레다’의 감정적 분화

‘설레다’는 감정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대표적 단어입니다. 단어 하나에 여러 종류의 감정이 응축되어 있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기대와 희망: “그와 다시 만나기로 한 날, 하루 종일 설렜다.”

두려움과 긴장: “면접 전날 밤은 설레는 동시에 불안했다.”

첫 경험의 떨림: “첫 공연 무대에서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모호한 감정의 진동: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왠지 설렌다.”

이처럼 맥락에 따라 ‘설레다’는 복합적인 감정군을 자연스럽게 포괄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어 감정어의 특징인 ‘여백의 감정’을 반영합니다. 즉, 언어가 말하지 않은 감정까지도 듣는 사람이 해석할 수 있게 여운을 남기는 것입니다.

 

‘설레다’는 한국 문학과 대중문화에서 주요 감정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인들은 이 단어를 계절과 마음의 떨림을 함께 그리는 데 자주 사용하며, 소설가들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활용합니다. 특히 청춘 소설, 성장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는 ‘설렘’이 플롯을 이끄는 중요한 감정의 축입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주인공의 내면 독백으로 “이상하게 설렌다.”, “가슴이 자꾸 뛰어.” 같은 대사가 등장하며 시청자와 감정을 공유합니다. 이는 감정의 공감력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와 시청자 간의 감성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설레다’는 단어는 한국인의 정서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어로 기능하며, 일상의 언어를 예술로 확장하는 도구가 됩니다.

 

사랑과 설렘의 절묘한 관계

‘설레다’와 ‘사랑’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첫 만남, 짝사랑, 고백 전날, 연인과의 데이트, 장거리 연애 중 만남을 앞둔 순간 등, 거의 모든 로맨틱한 정황에 이 단어가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이때 ‘설레다’는 단순히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입구 역할을 합니다.

또한 설렘은 사랑이 성숙할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지속되기도 합니다. 오랜 연인이 함께 손을 잡을 때 느끼는 따뜻한 미세한 떨림, 가족이 주는 소소한 감동 역시 ‘설레는 순간’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설레다’는 사랑의 시작뿐 아니라 지속과 회상에서도 기능하는 감정어입니다.

이처럼 설렘은 사람 간 관계의 밀도와 온기를 반영하는 감정이며, 그 감정의 존재 자체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줍니다.

 

일상 속 ‘설레다’의 순간들

‘설레다’는 특별한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 작은 변화와 기대가 설렘을 불러옵니다.

좋아하는 꽃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 때

오래 기다린 책이 도착했을 때

카페에서 처음 마셔보는 음료를 주문하며 기대할 때

좋아하는 노래가 거리에서 흘러나올 때

새 가방을 메고 출근하는 첫날 아침

이처럼 설렘은 일상의 소소한 장면 속에 숨어 있다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감정의 물결처럼 밀려옵니다. 그리고 이 작지만 선명한 떨림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고, 삶에 대한 애착을 키워줍니다.

 

세대별 설렘의 표현 방식

세대마다 ‘설레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10대는 SNS와 메신저에서 “오늘 설렌다”처럼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40대 이후의 세대는 좀 더 절제되고 내면화된 방식으로 감정을 나타냅니다.

청소년에게는 새 친구, 시험 결과, 입시 등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가 설렘을 유발합니다. 20~30대는 진로, 연애, 여행, 사회적 기회 등 다양한 설렘의 원인을 가지며, 40대 이상은 자녀의 성장, 일상의 평화, 혹은 과거의 추억에서 설렘을 발견합니다.

세대 간 감정의 언어가 달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세대가 ‘설레다’는 감정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설레다’가 얼마나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감정인가를 보여줍니다.

 

한국어는 감정을 언어로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설레다’는 그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영어에서는 여러 단어로 나뉘어 표현해야 하는 감정들을, 한국어는 ‘설레다’라는 하나의 단어로 조화롭게 포착합니다.

이처럼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포착해낼 수 있다는 것은 한국어 사용자들이 감정을 섬세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문화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언어적 감수성은 한국 문화를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설레다’라는 감정의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과 깊이를 살펴보았습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누구나 표현하기는 어려운 감정, 바로 그 감정을 한 단어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 한글의 위대함이자 정서의 섬세함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와는 또 다른 결의 감정, ‘서운하다’를 중심으로 한글이 담아내는 미묘한 감정의 풍경을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람 사이의 거리감과 아쉬움, 그리고 그 감정의 표현을 어떻게 단어 하나로 담아낼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